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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마테라피

아로마테라피의 역사: 인도, 그리스, 로마, 중동

by 금침수정 2023. 7. 7.

1. 인도의 아로마테라피

 

고대 인도에서 아로마는 종교의식, 치료, 미용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다. 기원전 6세기에 고대 인도의 의사 수슈루타는 그간 구전되어 오던 인도의 전통 의학과 고대 힌두교의 전통 의학을 집대성한 의학서 <아유르베다>를 집필했다. 산스크리트어인 아유르베다(ayurveda)의 어원은 생명, , 활기, 건강, 수명, 장수를 뜻하는 아율(ayur)과 지식, 또는 지혜를 뜻하는 베다(veda)가 합쳐진 것이다. <아유르베다>는 과학적, 종교적, 철학적 요소를 두루 갖춘 의학 서적으로 평가받는데, 여기에 다양한 의학적, 약학적 효능을 가진 방향 식물들이 서술되어 있다. 또한 기원전 2,000년 경에 쓰인 베다 경전에도 700여 개의 유용한 방향 식물의 특성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인도 아로마테라피에서 활용된 향신료들

 

인도의 약용 식물은 서양 의학에서 치료적 목적으로 많이 쓰였으며, 아로마테라피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아유르베다>에서는 인간에게는 고유한 3개의 도사(dosa: 체질, , 몸과 마음 상태 전반)인 바타(vata: 공기, 바람의 요소), 피타(pitta: , 물의 요소), 카파(kapha: , 흙의 요소)가 있다고 보았다. 3개의 도사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한데, 균형 상태가 깨지면 아그니(소화를 시키는 불)가 약해져서 아마(소화되지 않은 물질)가 생기고, 이것이 몸 안의 여러 통로를 막으면서 다양한 병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아유르베다>에서는 3개 도사의 불균형을 회복시키기 위해 각 사람의 체질, 상태에 맞춰서 약용 식물 등을 처방하는 법을 가르쳤고, 인간의 질병을 예방, 치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조화를 맞추는 데 있다고 보았다. 조화와 균형을 회복하는 것은 현대의 아로마테라피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바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도 <아유르베다>를 지침으로 삼아 환자들을 치료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인도는 향료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향료, 향신료가 풍부하게 나는 곳으로,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큰 향신료 시장으로 손꼽힌다. 샌달우드를 비롯하여 몰약, 진저, 시나몬 등이 특히 널리 사용된 오일이며, 베티버와 패출리는 인도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샌달우드는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된 오일로, 신성한 힘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다. 인도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 샌달우드가 들어간 향유를 자기 몸에 부었으며, 악령을 내쫓기 위해 사원에 피우는 향도 샌달우드를 주재료로 하여 만들어졌다.

<아유르베다>의 지침에 따라 개인의 체질을 파악하고, 각 체질에 맞는 아로마를 활용하여 마사지하는 아유르베다 마사지는 현대에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또한 다양한 향료로 만든 향(incense)을 피우는 인도의 향 문화는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으며, 불교와 함께 발전하여 중국, 우리나라에까지 전파되었다. 향은 오늘날에도 불교의 여러 의식에서 필수품으로 이용되고 있다.

 

2. 그리스, 로마의 아로마테라피

 

그리스인들은 이집트인들에게서 전수한 지식을 토대로 하여 아로마를 활용하였다. 기원전 400년 무렵에 헤로도토스(Herodotos)와 데모크라테스(Democrates)는 이집트를 방문하여 이집트의 향수를 포함한 다양한 아로마 활용법을 공부하였고, 그리스에 돌아와서는 이 지식을 바탕으로 의학 기관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이후 그리스에서는 아로마가 여러 방면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종교적 의미를 가지고 신의 제단에 바치는 향료나 향유를 제조하는 역할을 전담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는 인류 역사에 최초로 등장하는 조향사이다.

히포크라테스는 자신의 의학서에 아로마 목욕은 특히 여성 질병에 도움이 되며, 다른 상태를 완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기술하였다. 그는 아로마가 항균 성분을 갖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전염병이 유행하는 시기에는 전염병의 확산 방지 및 예방을 위해 아로마를 지닌 식물들을 사용할 것을 권고하였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동안 아테네에 역병이 돌자 히포크라테스는 아로마 원료를 훈향을 하여 전염병을 퇴치하려고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는 인간의 신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인간 전반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전인론적 치료로서의 아로마테라피의 철학과도 일치하는 바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테오프라스토스(Theophrastus)는 기원전 300년경 아로마를 지닌 식물의 다양한 사용법을 담은 책인 <식물에 관하여(Enquiry into Plants)>를 썼다. 그는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 연구를 식물에 대한 연구로 확대하는 역할을 하여 훗날 식물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다. 또한 향기에 대하여 그가 쓴 최초의 논문 <향에 대한(Concerning Odours)>에는 그리스인들이 만들어내거나 수입한 모든 방향성 물질에 대하여 기술하였고, 더 나아가 이 물질들의 사용법에 대해서도 논의하였다.

1세기경 네로 황제의 군의관이었던 그리스인 디오스코리데스(Dioscorides)는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얻은 지식을 기반으로 하여, 500여 종의 식물에 대해 기록한 책인 <약물에 관하여(De Materia Medica)>를 집필하였다. 훗날 서양 본초학의 기초가 된 이 책에도 바질, 버베나, 카다몬, 로즈, 로즈마리, 갈릭 등의 다양한 아로마에 대한 기록이 포함되어 있다.

기원전 1,240년 유대인들이 이집트에서 이스라엘로 대거 이주할 때 여러 희귀한 고무수지와 에센셜 오일도 함께 운반되었다. 출애굽기에 따르면 이스라엘로 향하는 여정 중에 모세가 신에게서 성유 만드는 방법을 전수하였다고 알려지는데, 후대로도 전해져서 성직자의 봉헌에 사용된 이 성유의 재료에는 미르, 시나몬, 칼라무스, 카시아, 올리브 등이 포함되어 있다. 예수가 탄생할 때 동방박사들이 바친 보물들에 프랑킨센스와 미르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또한 유대인들은 신체적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프랑킨센스와 미르를 포도주에 섞어 마시기도 했다.

다양한 향료를 사용하는 문화는 그리스를 거쳐 로마에 전해졌다. 그리고 로마인들은 세계 각국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다양한 아로마 성분이 포함된 에센셜 오일을 생산, 사용하였다. 특히 로마제국이 지중해를 평정한 후 아시아, 중동에서 들어온 향료가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그중에서도 로즈가 가장 즐겨 사용되었다. 네로 황제 시대에는 로즈 에센셜 오일이 다양하게 애용되었는데, 연회장의 손님들에게 장미 화관을 씌워주고 네로 자신이 사용하는 방에는 장미 꽃잎을 가득 채워두고 생활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왕비의 장례식에서 네로 황제는 그 당시에 중동에서 10년에 걸쳐 생산하는 양에 해당하는 로즈 오일을 하루 만에 사용하였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또한 로마인들은 모든 생활에서 다양한 향료들을 사용하였는데, 몸을 가꾸고 옷을 단장할 때뿐만이 아니라 집안의 벽에도 향기를 내는 데에도 향료를 활용하였다. 특히 로마에서는 목욕 문화가 발달하여 목욕탕이 사교의 장으로 널리 애용되었고 점령지마다 목욕탕을 건축하였는데, 목욕할 때 사용하는 아로마 용품들도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3세기경에는 1,600명의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의 목욕탕이 건립되기도 하였는데, 이 목욕탕에서도 많은 양의 에센셜 오일이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검투사들의 치료에서 능력을 발휘하여 인정받고 마르쿠스 황제의 주치의로 임명되었던 클라우디오스 갈레노스(Claudius Galenus)는 히포크라테스 이래 최고의 의학자로 손꼽히는 인물로, 고대 의학의 완성자로 유명하다. 그는 돼지와 원숭이를 실험하여 서양 해부학의 기초를 만들었고, 생체 해부도 실시하였는데, 특히 신경계에 관한 실험적 연구를 많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역시 히포크라테스의 주장을 이어받아 에센셜 오일을 치료에 다양하게 활용하였고, 식물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효력에 따른 등급을 정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서로마가 멸망하고 기독교를 중심으로 유럽의 질서가 확립되면서 아로마의 활용에도 많은 제약이 발생하였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아로마가 감각적 즐거움을 준다는 이유를 들면서 아로마의 활용이 금기시되었다. 6세기 말에 당시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모든 형태의 물질적 의료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통과시켜 많은 내과의사들이 콘스탄티노플로 망명하는 사태를 초래하였다. 이들과 함께 향료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활용법이 유럽에서 사장되며 해당 지역에서는 한동안 아로마테라피의 암흑시대가 찾아오게 된다.

 

3. 중동의 아로마테라피

 

980년에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에 해당하는 아프샤나 지역에서 태어난 아비세나(Avicenna)는 자신의 저서에서 현재에도 널리 사용되는 카모마일, 캠퍼, 라벤더 등 약 800여 가지 식물의 에센셜 오일 및 마사지 기술이 인체에 미치는 효과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또한 아로마테라피에 있어서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냉각 코일을 사용한 증류 추출법을 고안한 것이다. 증류법은 이전 수백여 년의 시간 동안 발달해온 에센셜 오일 추출법이었으나, 아비세나는 이를 개량, 발전시켜서 순수한 에센셜 오일의 추출이 가능하게끔 만들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후 약 900년 동안 아비세나가 사용하였던 기구들이 더 개량되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그의 기술은 혁신적이었다. 이 증류 방식을 통해 서양에서는 현재의 에센셜 오일과 비슷한 장미유를 장미꽃으로부터 추출할 수 있게 되었다. 아비세나가 이처럼 혁신적인 냉각 장치를 개발하고, 그가 저술한 <약학전범집(The Canon of Medicine)><치유의 책(The Book of Healing)>이 수 세기 동안 의과대학 교재로 사용되면서 아로마테라피는 부활하여 유럽으로 전해질 수 있었다.

또한 아랍인들은 냉각 장치를 이용한 증류법을 통해 최초로 순수한 에탄올을 얻게 되었고, 지방 대신 에탄올을 에센셜 오일을 추출하는 새로운 용매로 사용하게 되었다. 또한 에탄올이 유럽에 전파되면서 향수에 알코올이 첨가되기 시작했고, 이는 현대적 형태의 향수 제조로 이어졌다. 지금의 오드 뚜왈렛 같은 향수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헝가리 워터1370년경에 로즈마리 오일을 에탄올에 녹여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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