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럽 중세의 아로마테라피
로마제국의 쇠퇴는 유럽 문명이 쇠퇴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 과정에서 아로마테라피와 에센셜 오일에 대한 지식도 대부분 잊히게 되었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아로마의 개인적 사용이 방탕한 생활의 흔적이자 천박한 사치라고 여겼다. 또한 초기 기독교인들은 씻지 않고 더러운 상태로 지내면서 악취를 풍기는 것을 청빈함의 미덕으로 여기면서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이러한 풍조로 인해 중세 유럽에서는 페스트 등의 전염병이 유행하는 일이 잦았고, 대다수의 사람이 당시에 질병의 원인으로 여겨진 악취를 강한 향기를 풍기는 허브와 에센셜 오일로 감추기 시작했다. 도시 행정을 담당하는 관리자들은 전염병 예방의 목적으로 대기를 정화하기 위해 방향제를 길거리에서 태우기도 했는데, 이때 자주 태웠던 것이 포맨더(pomander)였다. 포맨더는 클로브를 가득 담아서 장식한 오렌지에 시나몬 가루를 묻혀서 향이 배게끔 한 후에 건조한 것으로, 페스트 등의 전염병 예방을 위해 포맨더를 들고 다니거나 병실 창가에 두고는 했다. 또한 장미 향수와 식초를 바닥에 뿌리는 것도 전염병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권장되었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소나무나 로즈마리 등 향기가 강한 식물의 다발을 몸에 지니거나 길거리에서 태우는 경우도 많았다. 이처럼 방향 식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유럽의 수도원에서는 허브 정원을 가꾸는 경우가 많아졌고, 12세기에 독일의 수녀원장인 힐더가르트는 식물 의학에 대한 4권의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또한 11세기~13세기 말에 걸쳐 여러 차례 있었던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향신료와 허브, 향수를 유럽으로 수입하기 위한 무역 노선도 중동 지방과 유럽 사이에서 개척되었다. 아비세나가 개발한 냉각 장치 증류법도 이 무역 노선을 통해 전해졌다.
영국에서는 13세기에 에센셜 오일을 처음 사용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원래 장갑을 만드는 기술자들이 가죽 냄새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장갑에 에센셜 오일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이 기술자들이 콜레라 등의 전염병에 거의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에센셜 오일의 의학적 효능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셰익스피어의 사위인 홀은 300여 가지가 넘는 식물들을 활용하여 사람들을 치료하였고, 이 중 178가지의 사례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영국 국회는 1512년에 처음으로 의약품 처방 및 판매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고 6년 후에 런던 왕립 의과대학이 설립되었는데, 이 과정에서도 에센셜 오일과 식물이 활용한 치료가 계속해서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또한 17세기 영국 본초학자인 니콜라스 컬페퍼(Nicholas Culpeper)의 <약초의학서>는 수백 종의 식물의 상세한 의약적 특징에 대해 다루면서, 각 약초를 활용한 가장 효과적인 치료 방법과 복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의학적인 목적 이외에도,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옷 단장과 일상생활에서도 아로마를 다양하게 활용하기도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15세기에 아로마 성분을 활용하여 향수 제조 기술을 발달시켰다. 당시 이탈리아의 명문가였던 메디치 가문 출신의 카트린 드 메디치가 프랑스의 왕 앙리 2세와 결혼하게 된 것을 계기로 하여 이탈리아의 향수 제조법이 프랑스로도 전파되었다. 프랑스에서는 17세기에 루이 14세가 즉위한 이후부터 아로마가 널리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남부 그라세(Grasse) 지방에서 방향 식물을 본격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우수한 품질의 에센셜 오일이 많이 생산되었고, 프랑스는 에센셜 오일의 유명한 생산지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2, 근대 및 현대의 아로마테라피
1800년대에 들어오면서 화학 분야의 여러 가지 기술이 크게 발전하였다. 그 결과, 1825년에는 쿠마린이 발견되었고, 이후 1868년에는 쿠마린 합성에 성공하기도 했다. 또한 1891년에는 멘톨 합성에도 성공하였으며, 1890년대 후반에는 제라니올, 시트로넬롤과 같은 성분들도 발견되었다. 1882년 휘틀러는 <물질의학과 치료>라는 논문에서 향유에 대한 과학적인 평가를 처음으로 시도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다양한 기술이 발전하면서, 치료적 효능을 가진 식물 성분을 확인하고 분리해내는 작업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고, 19세기 이후로는 이처럼 효능을 가진 식물 성분을 압착법과 유기용매 활용을 통해 추출하게 되었다.
1880년대 말에는 미생물들이 여러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이 밝혀졌는데, 더불어 몇몇 에센셜 오일은 이러한 미생물들의 번식을 억제하는 항균성 물질로 작용한다는 것도 알려졌다. 당시에는 결핵은 여러 지역,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앓는 일반적인 질병이었다. 그러나 꽃이 다양하게 피는 일부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 결핵 발병률이 낮고, 꽃과 허브를 가까이하는 노동자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호흡기 질환을 적게 앓는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사실이 주목받으면서 1887년에는 에센셜 오일에 함유된 항박테리아 성분에 대한 최초의 실험이 진행되기도 했다. 또한 1880년대에는 프랑스의 Chamberland과 Cadeac, Meunier가 선열과 황열병을 유발하는 미생물이 에센셜 오일을 접하면 쉽게 죽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의 연구에서는 오레가노, 시나몬, 안젤리카 등이 미생물의 번식을 억제하는 데 효과가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적인 의미의 과학적, 체계적인 아로마테라피의 역사는 짧다. 20세기에 들어서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여 아로마 성분과 아로마테라피에 대한 연구가 화학자인 가트포세(Gattefosse)의 업적을 시작으로 체계화되었기 때문이다. 1937년 프랑스의 코스메틱 과학자인 가트포세는 아로마테라피에 대한 최초의 저서를 냈고, 그 책에서 최초로 아로마테라피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는 우연히 에센셜 오일의 치료적 효능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계기는 1910년 7월의 실험실 폭발 사고였다. 이때 가트포세는 손에 심한 화상을 입었는데, 환부에 라벤더 오일을 우연히 발랐다가 치유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라벤더 오일의 치료적 특성을 발견했다. 그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에센셜 오일을 치료적 목적으로 활용한 것은 아니지만, 아로마의 치료적 효과성을 ‘아로마테라피’라는 단어로 구체화하여 연구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경험적 근거들을 수집하는 데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종군하여 부상병을 치료할 때 에센셜 오일을 활용하였다. 군인들의 상처를 치료하면서 가트포세는 에센셜 오일이 치료의 효과를 촉진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에센셜 오일이 피부로 침투한 후, 세포외액을 통해 혈관과 림프와 같은 신체 기관의 순환계에 도달하고, 그 다음에는 순환계를 통해 신체 곳곳으로 운반될 수 있다고 서술하였다. 그리고 그는 화학자였기에 에센셜 오일의 화학적 구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향수 제조자로서 에센셜 오일의 향에 관심을 갖고 활용하는 과정에서 아로마가 심리치료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가트포세의 뒤를 이어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아로마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었으며, 아로마가 피부를 치유하는 것 외에도 면역 체계를 강화하는 데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프랑스의 외과의사 장 발렛(Jean Valnet)은 육군 외과의사로서 1948년~1959년에 일어난 인도차이나 전쟁에 종군하였는데, 이때 부상병을 치료할 때 방부제로 에센셜 오일을 사용하였다. 또한 그는 병사들의 상처나 화상 치료에 타임, 레몬, 카모마일 등을 사용하여 그 효능을 밝혔고,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정신병 환자의 치료에 에센셜 오일을 활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그는 1964년에 <The Practice of Aromatherapy>를 저술하여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이 책은 오늘날 아로마테라피의 바이블로 불린다.
장 발렛에 이어 오스트리아의 생화학자 마가레트 마리(Marguerite Maury)도 아로마테라피에 대한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였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미용 전문가로 활동하였으며, 미용치료에 관심이 많았다. 개인의 특성에 맞는 에센셜 오일의 성분이 피부 미용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발견한 그녀는 에센셜 오일을 마사지에 적용하였다. 에센셜 오일을 이용하여 마사지하는 방법은 역사 속의 여러 문명에서 의학적 목적으로 활용되어 왔으나, 그녀는 아로마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아로마테라피 마사지 테크닉을 개발한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런던에 아로마테라피 클리닉을 개설한 후 그녀는 동종요법 의사들에게 에센셜 오일의 내과적 사용법과 기타 방법에 대해서도 제시하였으며, 학생들에게도 아로마테라피에 대해 폭넓게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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